바다의 표범 장보고
828년 4월에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흥덕왕을 알현하고, 사졸 1만 명으로 완도에 진을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청을 들어
주었고, 장보고는 마침내 완도에 해상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흥덕왕은 장보고에게 ‘청해진 대사’라는 특별한 직책을 내려 주었고, 장보고는
수병들을 훈련시켜 해적들을 소탕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또한 신라의 고급 직물과 비단, 금은 세공품을 외국으로 수출하고, 신라 귀족들이 애
용하는 향료 등을 외국에서 수입했습니다.
장보고가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836년에 경주에서 일어난 왕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오면서부터였습니다. 장보고는 김우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이듬해에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
(신무왕)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신무왕의 뒤를 이은 문성왕은 장보고를 진해 장군으로 봉하고, 그의 딸을 왕비로 (또는 신무왕의 왕비로) 맞이
하려 했지요. 그러나 귀족들은 장보고의 세력에 불안을 느끼고 왕비 책봉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장보고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옛 부하였
던 염장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