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조선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는 우리의 일상은 뉴노멀의 연속이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매일 변화하고 느끼는 크기와 깊이가 다를 뿐, 변화에 적응하는 오늘이 작은 뉴노멀이다. 개인도 어느 시기가 오면 큰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뉴노멀리스트다.
적용하는 방법과 모습이 시대에 따라 다르고 풍습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나름의 틀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 가고 있다. 부대끼며 사회는 변하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틀을 조금씩 변형하기도 한다. 변형하다 보면 원형의 취지와 거리가 먼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익숙하게 적응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제도가 사회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되거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면 우리의 일상은 혼돈으로 내 몰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혼돈 상황에서 기존의 통념에 젖어 벗어나기 힘들고 오히려 변화에 대해 저항하기도 한다. 가능하면 기존의 통념을 유지하기 위해 통념을 통제하는 옥상옥의 제도를 만들기도 한다. 변형하거나 수정된 제도로 버텨 보지만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더 버텨낼 수 없는 사회적 혼돈 상태가 우리역사에서 고려말 조선초로 유추된다. 기득권층과 신진세력의 갈등으로부터 민초들의 어려운 생활환경은 새로운 틀을 바랬을 것이다.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틀을 아무리 변형해도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기존의 관념이나 제도로는 사회변화를 관리하거나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변화에 따라가는 만족스럽지 못한 일상으로 혼돈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나타난 뉴노멀이 조선이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조선은 기존의 불교의 틀에서 유교의 틀로, 개경에서 한양으로 뉴노멀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운 엄청난 시도로 저항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600여년전에 탄생한 뉴노멀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남아있고 어느 부분은 지금도 온전히 답습하면서 부대끼고 있다.
당시 유학은 새로운 것도 아니었고 그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유학이 출발했고 발전했던 중국조차도 적용하는 방법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조선은 성리학을 유학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실체라도 그 적용방법과 응용이 중요함을 말하려 한다.
당시의 뉴노멀이 조선이었고 조선은 그 뉴노멀을 실행에 옮겨 실체를 만들었고 새로운 사회의 일상을 만들었다. 그 뉴노멀의 실체가 한양 신도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제도 많은 부분이 새롭게 적용하였고 지금까지도 우리 일상에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한반도 위주의 조선과는 다르게 전세계에 통용되는 뉴노멀이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야 할까? 우리는 조선이 했던 접근방법을 참고해 보면 우리의 역량이 보일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했던 4차산업혁명시대의 도래를 코로나19가 혼돈 속으로 몰아 넣으며 뉴노멀을 더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현재 코로나는 누구도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혼돈의 중심에 있다. 그 혼돈이 한반도나 동양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가 느끼고 공감하는 흐름이다. 600년전의 혼돈과는 그 양상과 범위가 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