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와 소나무의 노래 이황
명종은 이황의 학문과 인품을 높게 사고 조정으로 불러들였지만, 이황은 고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의 사절이 당도하여 조정에
서 상경을 강권하자 마지못해 한양 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명종이 세상을 뜬 뒤, 신병을 핑계 삼아 귀향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선
조는 즉위 즉시 이황을 불러들였고, 이황은 여러 차례의 고사 끝에 간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대제학, 지경연의 중임을 맡기도 했습니
다.
이황은 성리학을 한층 더 발전시켰으며 기대승과 8년 동안 학문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학자로서 쌍벽을 이
루는 이이와 만나 학문을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이황은 철저한 사색을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며 독
단과 경솔을 멀리했습니다. 또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일치해야 된다고 주장한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