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철학
이 책은 예술과 철학을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입문서다. 예술 철학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고, 굳이 예술과 철학이라고 구분한 것은 서로 넘나들기 어려운 독자적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가는 굳이 이론적으로 철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 마음에 흡족하든 그렇지 않든 예술 그 자체가 곧 모든 것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예술은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하고, 성스러운 것이며, 다른 한편 모순되고, 아프고, 괴롭고, 설명 불가능한, 사람 냄새나는 진솔한 이야기다. “안티고네”를 구경하는 관객들은 고뇌하는 안티고네의 모습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an sich / in itself) 보여주기 위해 혼을 불사르는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이내 깊은 감동에 빠져든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웅장한 모습과 사람 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현해내는 예술가들의 기막힌 솜씨를 보면서 관객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예술은 아름답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예술은 추하다. 미와 추를 굳이 구분하지 않은 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술 행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신비롭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사람들의 행위와 말 그리고 감정을 들여다본다. 예술은 모순이다. 재현해낼 수 없는 것을 재현해보려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모순의 연속이다. 사태의 바깥에 있는 듯 보이면서 어느 순간 사태의 본질에 근접해 있다.
철학은 언어를 통한 사유다. 아니다. 언어만이 사유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언어 이전에도 세상은 존재해왔고, 언어 없이도 인간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 천 따지를 암송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언어의 마술이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한다. 옴짝 달싹 못하게 이리저리 옭아맨다. 언어는 참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언어의 숲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있다. 다시 정신 차려 언어를 사용해 철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말해본다. 철학은 자연과 인간 세상 간의 대화다. 기나긴 대화다. 자연 앞의 인간존재뿐만 아니라 인간들 간의 충돌과 화해 등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헤르메스 신화다. 어느 것이 맞는지 틀린지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다. 다 자기 얘기가 맞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랴. 철학은 언어이면서 동시에 비언어다. 고대 동굴벽화에 묘사된 픽토그램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인생의 좌표다. 이성, 감성, 행위, 사물 등을 이러쿵저러쿵 풀어 놓은 이야기다. 철학은 성전에서 낭독하는 경전이 아니다. 다름과 열림이다.
그간 발표한 논문들을 재구성해 집필한 이 책은 예술, 철학과 미학, 문학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술분야에서는 사진, 픽토그램, 인상주의를 다루고 있고, 철학과 미학분야에서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의 사상과 미학을 다루고 있고, 문학분야에서는 “안티고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 예술에서는 사진의 독자적 예술 경지에 대해 논할 뿐만 아니라 사진 치료와 응용에 대해 다루고 있고 디자인의 픽토그램 기능과 인상주의 예술을 다룬다. 칸트, 헤겔, 하이데거 미학을 논할 때는 숭고미, 역사적 동일화, 예술의 현재성 등에 대해 다룬다. 문학에서는 횔덜린의 번역과 브레히트의 번안을 비교분석하고 있고, 또한 쉴링크의 소설을 역사 극복과 독서 교육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